특히 접속시간과 빈도를 늘리기 위한 이벤트를 자주하는 mmorpg는 더 그렇다.
며칠 전 신년을 위한 다이어리를 구매하면서 생각했다.
퇴사하고 백수생활을 하면서 mmorpg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막 육성하는 단계라 게임에 중독되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캐릭터가 성장하고, 그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한 부캐들을 키우고, 게임사가 유저들의 접속시간과 빈도를 늘리기 위해 진행하는 각종 이벤트를 끊임없이 참가하며 보상을 얻다보니 어느 순간 중독되었던 것 같다.
그 때는 그냥 나는 즐겜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딱히 돈을 많이 쓴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무과금 유저에 가까웠으며 몇몇 친구들과만 함께 게임했지 길드에 들어가서 사람들과의 친목에 온 신경을 쏟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던 것 같다.
게임 때문에 밖에 나가기 싫은 나, 게임 때문에 영화 한 편, 책 한 권 읽지 않는 나. 언제부턴가 거울 속에서 보이는 내 눈빛이 흐리멍텅해 보였다. 모니터를 많이 봐서 눈이 피곤해 흐려보이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흐리멍텅해져서 눈빛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시간을 쓰고 있지?
이 질문이 시작된 순간 갑자기 게임에 쏟을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 이전에도 사실 게임 자체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식어 그만 둘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mmorpg의 무서운 점은 이게 그냥 rpg가 아니라 mmo라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함께 하는 사람들때문에, 함께 레이드를 가기로 약속했으니까, 꾸준히 접속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권태기를 극복하게 된다.
오히려 게임 권태기를 이겨내고 계속해서 시간과 관심을 쏟다보니 깨닫게 된 것 같다. 이처럼 시간(시간이 없다면 돈)을 갈아넣게 만드는 mmorpg는 나에게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결국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작년에 산 다이어리는 어떠한 계획도 적히지 않았고 오직 레이드 공략만 메모되어 있다.
취미로 하는 게임이었다면 이렇게 시간을 정해서 일정시간동안 꾸준히 투자하면 안 됐다. 취미로 하는 게임이었다면 내가 해야하는 일, 혹은 발전적인 방향의 하고 싶은 일이 먼저 계획되고 그 사이 자투리 시간에 게임이라는 여가생활이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게임 스케줄이 먼저 정해지고 남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다이어리를 구매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다이어리에 대한 기대감과 차분히 다이어리를 쓰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게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게임 약속을 우선하고 저녁이나 되어서 다이어리를 사러 갔다. 하루를 거의 마무리하는 시간에 말이다.
퇴사하고 백수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깨닫게 된 것 같다. 규칙적인 접속과 실행을 요하는 게임이 우리 삶에 얼마나 유해한지. 이전에도 계속 게임은 했지만 학교나 회사 때문에 마음껏 할 수는 없었으니 알지 못했다. 지난 시간이 아깝지만 동시에 지난 시간이 있었기에 깨닫게 되었다.
지난 이틀간 늘 하던 mmorpg에 접속하지 않으면서 오랜만에 나와 내 주변을 돌봤는데, 오늘 거리를 지나가며 비친 나의 눈빛이 예전보다는 좀 총명해보였다. 앞으로 게임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고, 의무적인 접속을 요구하지 않는 게임을 여가생활로써 즐기며 나의 삶도 지켜나가고자 한다.
여담이지만 이래서 어린아이에게 게임을 알려줘야 한다면 차라리 구매해서 하는 콘솔게임 같은 종류를 시키라고 하는지도 알 것 같다. 그런 게임은 중간에 얼마든지 멈출 수 있고, 게임에 완결성이 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조절하기도 훨씬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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